고야의 구도

2021. 2. 11. 15:59DAILY LIFE STORY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1814)>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1814)>

내가 좋아하는 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의 학살(1814)>이다. 

고야는 낭만파 화가로 스페인 궁중화가였다. 당시 국제 정세는 프랑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는 중이었고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바다에게 크게 폐하여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유럽 대륙 국가는 영국과의 무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린다. 그러다 대국이었던 영국과의 무역을 못하면 경제에 큰 영향을 받는 포르투갈과 러시아가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프랑스는 포르투갈을 정복하기 위하여 스페인에게 길을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당시 불평등 조약을 맺은 스페인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 공포감으로 스페인 민중은 궐기를 했고 이에 겁먹은 무능한 카를로스 4세는 아들 페르나도 7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내려왔다. 그러나 이내 카를로스 4세는 나폴레옹에게 다시 자신이 왕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프랑스에게 내정 간섭의 빌미를 주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페르나도 7세를 왕위에서 내려오게 하고 자신의 형 조제프를 스페인 왕으로 정하였다. 이에 분노한 마드리드 민중은 1808년 5월 2일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프랑스 군대는 무력으로 민중을 제압했다. 그렇게 잡혀온 민중을 처벌하는 장면이다.

흰 옷을 입은 민중은 양팔을 벌리고 손바닥에는 못 자국이 있다. 마치 예수님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수도원은 불이 꺼진 채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 작품은 후대 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이 작품과 동일한 구도로 그린 여려 작품이 탄생했다.

 

개인적인 생각 

스페인 민중에 대한 동정은 당연하지만 스페인은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대해양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육을 통하여 부를 착취하여 왕족과 귀족들이 그 부를 사치에 열중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 어떻게 보면 인과응보인 셈이다.

 

마네의 <막시밀리언의 처형>

 

마네의 <막시밀리언의 처형>

멕시코가 엄연히 대통령이 있는 상태에서 멕시코 보수파의 요청으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언을 멕시코 황제로 세운다. 프랑스는 멕시코의 지하자원을 약탈할 목적으로 허수아비를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재정문제로 인하여 몇 년 후 프랑스 군대를 철수 시켰다. 이로 인하여 막시밀리언 황제는 아무 힘도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내  게릴라 병들에게 체포되고 1867년 6월 19일 멕시코 총살 대원에 의하여 사망하게 된다.

이 장면을 그린 작품으로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에 영향을 받는 마네는 구도를 거의 일치하게 그렸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오른쪽 끝에 총을 들고 있는 병사는 나폴레옹 3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나폴레옹 3세의 초상화와 비교해 보면 실제로 많이 닮았다. 

 

개인적인 생각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합스부르크 왕위 서열을 버리고 멕시코 허수아비 황제로 간 막시밀리언. 확실지 않은 왕위 서열보다도 확실한 허수하비 황제가 더 좋다고 판단한 거 같다. 외세에 의하여 어쩐 자리에 오른다면 그 외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렇게 하나의 허수아비가 없어졌다.

 

독일 가수 '막시밀리언 헤커'라고 있다. 난 그 가수를 좋아한다. 앨범명 Rose도 좋고 I am falling now도 좋다. 독특한 목소리 창법이 맘에 든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피카소가 한국전쟁 중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학살을 소재로 하여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공산당이 미국을 비난하기 위하여 당시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에 의뢰하여 완성된 작품이다. 그러나 무고한 양민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가해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프랑스 공산당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신천 학살의 가해자에 대하여는 북과 남의 입장이 180도 다르다. 당연히 북은 남측이 남은 북측이 가해자라 주장하고 있다. 한 시사프로에서는 "유엔군이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우익에 의한 마지막 학살이 있었다."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 학살의 원인을 따지자면 복잡하다. 신천은 곡창지대였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대대적인 토지개혁으로 인하여 지주세력과 항상 감초처럼 등장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연합하고 공산당을 지지하는 좌파세력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학살인 것이었다.

이 작품에서 피카소는 고양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의 구도가 그대로 사용되었다. 좌측에 학살당하는 여인들과 아이들 우측에 학살하는 군인.. 내가 보기에도 군인이 미군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피카소는 선동이 아니라 예술을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개인적인 생각 

피카소가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작품으로 만들어서 관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서글픈 생각이 든다. 외세에 의하여 남북한 정권이 들어오고 이데올로기에 묻혀 그동안 외세에 부역한 사람들을 단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앞잡이가 되어 저런 말도 안 되는 학살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서글프다.

그것 보다도 그렇게 이데올로기의 앞잡이들은 그렇게 지켜낸 재산으로 후손을 교육하여 2021년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주요 요직을 차지하며 잘 살고 있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픈 일이다. 난 나쁜 짓 하면 벌을 받는다고 배워왔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하긴 진정 정통성 있는 정권이 생긴데 얼마 안 됐으니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풀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