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시각에서의 일본의 2차 세계대전
메이지 유신
1800년대 조선과 동일하게 일본도 외세의 접근을 꺼리며 배척하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과 접촉하였을 때도 당연히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결국 미국은 1854년 페리 제독과 군함 9척을 대동하여 2차로 일본에 문호 개방을 요구하였다. 이내 일본은 미국의 힘에 굴복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였다. 미국은 일본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단계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려던 미국은 더 이상 일본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일본에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일본은 빠르게 1868년 메이지유신( 明治維新 めいじいしん)을 통하여 제도를 개편하고 자본주의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독점자본주의 진입
미국의 관심에서 벗어난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고 공장을 지어 그대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하여 공업화, 산업화에 성공하여 1800년대 후반에 독점자본주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은 이제는 미국과 유럽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말하면 일본도 제국주의화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점자본주의는 공업화, 산업화로 인하여 국내 생산량이 급속히 늘어나게 되어 공급과잉 현상이 발생한다. 많은 공장직원들에게 급여를 주어야 하고 급여는 지속적으로 인상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소비처와 그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싸게 공급할 식량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자연 스럽게 식민지 필요성이 대두되고 몇백 년 동안 품어 왔던 야심과 맞아 떨어져 일본은 결국 대한제국을 병탄하고 말았다.
경제 고도성장의 단계
일본은 대한제국을 병탄 후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은 당연히 식량의 확보와 관련된 토지조사사업과 조선에서 쉽게 회사를 차릴 수 없게 하기 위하여 회사령이었다.
이 시행을 통하여 조선의 값싼 식량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가져가고 일본의 공산품을 조선에 판매하여 이중적인 이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인 자체적으로 공업화하는 것을 막았으며 식량을 약탈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통치를 이어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다. 3.1 운동 결과 통치 방법이 보다 유연한 문화통치로 바뀌었는데 3.1 운동의 효과였지만 그 배경은 일본은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에 20% 이상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계대전 화마에서 벗어난 미국과 일본은 엄청난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대한제국에 대하여도 좀 더 유연한 통치방법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대공황으로 인한 공급과잉
영원히 고도성장을 할 것 같은 일본에 문제가 발생한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도 공황의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결국 식민지가 더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배경이 되어 결국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빈 영토와 같은 만주에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운 것이다.
일본은 만주국으로 공급과잉이 해결되지 않자 중국에 대한 야심을 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결국 무타구치 렌이라는 지휘관의 개인적 판단으로 중국군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사건을 계기로 인하여 중일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군은 어떤 계기가 생겨 중국과 전쟁이 발발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상태였고 일본군은 중국 대륙을 짧은 시일 안에 집어삼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내전이 발생하는 상황이었으나 국민당과 공산당은 일본군을 상대하기 위하여 국공합작하여 일본군에 대적하였다.
시장을 넓히기 위하여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중국 대륙의 1/3 이상을 차지하며 진격하고 있었으나 미국과 서방은 중국의 국민당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 지원과 중국군의 인해전술로 인하여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군기가 물란했던 국민당 군대는 이무기를 빼돌리는 해이한 군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결국 국민당은 민초들의 많은 목숨을 빼앗아가면서 간신히 일본군과의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전선은 고착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전쟁의 자원 고갈 문제
일본은 고민에 빠졌다.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인 목재와 석유가 바닥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독일의 기술인 석탄을 석유로 만드는 방법 등을 연구하였으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었다. 결국 목재와 석유가 풍부한 동남아시아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2ㅊ 세계대전으로 그 주인이던 유럽국은 전혀 동남아시아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었던 것이다. 필리핀을 지나서 동남아시아로 가야 하지만 필리핀에 있는 미군이 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결정을 내린다. 미국 본토에서 아시아로 오기 위하여 꼭 들려야 하는 기착지인 하와이를 선제공격하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하와이의 미군함이 주둔하고 있는 진주만을 대대적으로 폭격하여 진주만은 초토화되었다. 당연히 미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물류의 어려움
진주만을 폭격한 일본은 안심하고 필리핀으로 들어갔다. 손쉽게 필리핀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내려가 동남아시아 전부를 집어삼켰다. 이렇게 하여 전쟁에 필요한 목재와 석유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의 미국의 생산능력이었다.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위하여 엄청난 항공모함과 전투함, 비행기를 찍어내기 시작하였고 이내 진주만 폭격 전 전력을 상회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태평양전쟁의 전황의 일본에 불리하게 흘러갔고 일본 본토까지 폭격받는 상황까지 되었다.
당시 일본은 급격하게 근대화, 공업화에 성공한 나라이므로 아직 정밀공업은 발전되지 못하였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미국의 군사무기 보다 성능이 좋은 비행기, 전투함으로 상대하여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으로 인하여 해양을 이용한 물류가 원활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은 미국에 항복하지 않고 버티면서 무고한 일본인을 재물로 만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최후의 선택을 하였다. 더 이상 미군의 희생을 원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은 도쿄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에 이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하였다.
이렇게 하여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고 대한제국과 만주국의 일본군과 관료들 그리고 중국에 전선을 유지하던 일본군과 동남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과 일본인은 일본으로 철수하면서 태평양전쟁 즉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경제적인 이슈에 대한 해결 방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이 있다. 1854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의 만행에 대한 결정은 경제적인 이슈와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섬나라인 일본은 기본적으로 대륙에 대한 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었고 경제적인 이슈에 의하여 그 야욕을 행동으로 실행하게 된 것이다. 결국 세계질서 또한 경제적인 이득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득이 없다면 그런 행동을 하고 싶어도 실행에 옮길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에 당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대한제국을 병탄 하였다. 그리고 만주을 집어삼키고 중국을 침략하였다.
중국은 국민들의 희생을 방패 삼고 미국과 서방의 군사적 지원으로 간신히 일본군을 막고 있었으나 힘이 부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자원이 고갈되고 있던 일본은 동남아로 전선을 확대한 것이 커다란 패착이 되고 말았다.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슈에 의하여 선택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타 국가를 침범하여 식민지화하느냐 아니면 일본 내에서 이슈에 대응하는 긴축재정 및 산업 정비 정책을 펴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본은 타 국가를 침범하는 선택을 하였다. 그동안 일본을 보았을 때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자국의 서민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면서 이웃국가에 극대한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하여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갖은 괘변을 펼치며 아직도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은 모습이 안타깝게 한다. 아직도 제국주의 시대의 영광을 되살리자는 일본 우익의 행태를 보자면 잘못 버릇을 들인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 된다. 다른 아이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고 사과조차 하지 않는 버릇없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고립되어 자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