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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사화(士禍) (우지사태로 인한 삼양라면의 몰락. 농심의 1위 굳히기)

KeNic 2021. 6. 12. 17:36

사극을 보다 보면 종종 '사화(士禍)'라는 말을 듣는다. 사화(士禍)란 '사림의 화'의 준말이다. 사화란 당한 쪽인 사림 측이 죄 없이 당한 화라고 주장하여 사화라는 표현이 직접 쓰이기 시작하였다. 근래 학자들은 부정적인 사화의 해석을 깨고 사화는 단순 권력 싸움이 아닌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변동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정치 현상으로 규명하고 있다.
1989년 11월 라면업계에도 이런 사화가 일어났다. 서울지방검찰청에 '공업용 우지(쇠기름)'으로 면을 튀기는 업체가 있다고 익명의 투서가 날아온 것이다.
결국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서울하인즈, 삼립유지, 부산유지의 5개 업체를 적발하고 대표 및 실무 책임자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입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당시 라면 업계의 형세 지도를 살펴보자면 농심이 1982년 너구리를 출시하여 1등 탈환의 기틀을 만들었고 1983년 안성탕면을 출시하여 삼양라면의 강력한 대항마를 만들었다. 1984년에는 짜파게티를 출시하여 짜장라면 카테고리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1986년 신라면의 출시로 프리미엄 라면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라면업계에서 독보적인 1위 업체가 되었다.
이때 삼양식품은 너구리의 대항마로 포장마차를 출시, 안성탕면의 대항마로 서울탕면, 호남탕면, 영남탕면을 출시, 짜파게티의 대항마로 짜짜로니 출시, 그리고 신라면의 대항마로 200냥을 출시하였다. 지금까지 라면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양식품이 어느덧 추격자로 변하여 농심이 만든 라면을 쫏아가는 형세로 바뀐 것이다.
너구리, 짜파게티, 신라면의 경우는 소비자의 마인드에서 새롭게 생긴 카테고리로 이 세 군데에서 처음 진입하여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 파워는 강력해졌다. 삼양식품이 아무리 경쟁 브랜드를 내놓아도 소비자 마인드에는 우동라면은 너구리, 짜장라면은 짜파게티, 프리미엄라면은 신라면 이렇게 각인된 상태에서 삼양이 어떤 말을 하여도 그 자리를 빼앗긴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농심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남달랐다. 너구리의 경우는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짜파게티는 '짜라짜라짜~'와 함께'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그리고 신라면은 '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으로 지속적인 광고를 하여 고객 마인드에 처음으로 진입한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당시의 시장 점유율은 농심 58% 삼양 19.9 %로 라면시장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고객의 마인드에 '라면의 원조'라는 삼양식품의 이미지는 잊혀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지파동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의 여론은 들끓기 시작하였다. 사람이 먹는 식품에 "공업용 우지'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발표되었는데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전 포스트에서 말한 먹거리 X파일에서 대만 카스텔라를 박멸하듯이 이때부터는 삼양을 비롯한 회사들의 항변은 들리지 않았다. 소비자의 마인드에는 '공업용 우지'라는 단어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삼양의 항변은 이렇다. 삼양이 우지를 써서 라면을 제조해온 것은 20년 전부터다. 당시 잘 먹지 못했던 국민들에게 동물성 지방분을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우지를 수입하고 정제하여 식용 우지로 사용할 것을 정부에서 권장하고 추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농심의 팜유보다도 톤 당 100달러가 더 비싼데도 우리를 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공업용 우지라는 것을 알게 된 소비자는 업계의 사과와 전량 수거, 해당 제품의 진열 판매 중지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검찰의 교묘한 말장난이 숨어 있다. 수입한 것은 '원유 상태의 비식용 우지'이다. 이것을 '공업용 우지'로 표현해 대중에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에게 마치 공업용 기름을 써서 라면이나 마가린을 제조하는 것처럼 인식된 것이다.

보사부에서 해당 제품 모두를 수거하여 검사하여 식품공전 규격에 어긋나는 제품은 단 한건도 나오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으나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혼란을 가중시켰다.
구속되었던 업체 관계자들은 보사부의 무해 발표를 근거로 보석으로 석방되고 검찰은 항고 의사를 밝혔으나 항고를 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결국 5년 8개월의 소송을 거쳐 1995녀 서울 고등법원, 1997년 대법원에서 전부 무죄로 판결이 나와 사건은 완전 종결되었다.
우지사태 이후 삼양식품의 상태는 처참했다. 시장점유율에 있어 오뚜기와 팔도에도 밀려 4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우지사태 뿐만 아니라 2세 회장의 다른 업종으로 사업 확당 실패, 신제품 개발 부진 등의 영향이 겹친 것이다.
삼양라면은 이후 라면 튀기는 데는 동물성 기름이 아닌 팜유 같은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오뚜기의 경우는 라면 쪽에서 문제가 없었으나 마가린 원료가 말썽이 되었으며, 삼립유지와 서울 하이즈 역시 롯데삼강에게 시장을 내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건실했던 부산유지는 이 사간으로 인하여 회사는 부도를 맞고 끝내 폐업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라면업계는 팜유가 대세가 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 오히려 팜유로 면을 튀기면 발암물질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왜 이 시점에서 삼양라면을 비롯하여 여러 업체들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것일까?
첫 번째, 농심배후설이다.
이런 사태에서 안전하였고 이 사태가 발생하면 이득을 보는 업체는 어디일까? 라면을 값싼 팜유로 튀기고 있었던 농심이었다.
농심은 이번 사태로 국내에서 삼양의 도전을 완전히 누르고 1위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태로 인하여 한국 라면의 해외 수출이 위축되는 효과도 가져왔다.
두 번째, 정권 보복설이다.
당시 삼양식품의 전 회장은 전 씨 종친회 회장이었고 5공시절 전두환씨와의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6공 노태우씨는 5 공과의 대립각을 세우면서 삼양라면을 탄압했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하튼 이런 두 가지 설을 뒤로하고  검찰은 '공업용 우지'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쓰면서 여론을 뒤흔들었다.
검찰도 이 사건이 여론에 상당히 민감한 것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타겟을로 삼고 사건을 수사하듯이 공업용 우지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여론을 등에 업으려 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 재판은 검찰이 패배한 재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검찰이 이긴 재판이기도 하다. 무엇인지 몰라도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이슈화해서 수사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참고로 이 당시 검찰총장은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으로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의 주인공 바로 "김기춘"이었다. 김기춘의 수사지휘 아래 우지사건의 수사가 진행됐던 것이다.
또 하나 의심스러운 것은 김기춘이 퇴직 후 농심에서 법률고문으로 매월 1천만 원의 급여를 받은 것이다. 삼양식품을 과잉수사를 하여 삼양식품을 위기로 빠트린 자가 경쟁회사의 법률고문으로 왔다는 것은 보은인사라는 논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여론의 비난이 일자 농심은 김기춘과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을 밝혔고 결국 김기춘은 고문직을 사직했다.

삼양식품 자체의 무리한 계열 확장과 방만한 경영 적극적인 신제품 개발에 투자가 미비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80년대 후반이면 우리나라 중산층이 많이 양성되고 식품에 있어서도 건강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점이다. 삼양식품도 자신이 우지를 사용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80년대 후반 동물성 기름이 부족하여 허약한 국민은 그리 많을 거란 생각은 안 든다. 그러므로 삼양라면은 우지를 사용하지 않고 이런 시대의 흐름에 맞게 건강에 부합하는 기름으로 라면을 생산하고 그에 맞는 가격을 책정해 판매를 했다면 새로운 건강에 신경 쓴 라면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그 영역에 안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삼양라면은 타성에 젖어 20년간 해온 제조법을 고수해 온 것이다.
라면은 돈 없고 배고픈 사람이 먹는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그 울타리 밖으로 벗어 나오지 못하고 만 것이다.
흐름을 읽고 그에 맞게 대응했다면 검찰의 조사로 인한 회사의 몰락은 없었을 것이다. 1위라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지속적인 광고에 투자하여야 한다. 농심의 예를 보아라. 당시 1위를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광고에 투자하였는가. 삼양식품은 문어발식 확장에 돈을 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여야 했다.
그리고 정권이 시장에 개입하여 그 힘을 이용하여 한 회사를 탄압하고 결국 부도를 내게 만드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도 정권의 힘은 업체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일에 충실하여야 한다. 심판이 직접 경기에 뛰어들어 판을 뒤흔드는 일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