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태어난 환타
지금은 초등학교라 하지만 예전 국민학교 당시 1년에 두 번씩 학교 근처로 소풍을 갔었다. 당시 학생들은 소풍 가는 날을 엄청 기다리며 그날 비 안 오도록 해달라고 빌고 빌었고 학교괴담으로 옛날 학교의 수위 아저씨께서 나무를 베다가 구렁이가 나와서 죽였는데 그 이후로 소풍 가는 날이면 비가 온다라는 카더라 괴담까지 난무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소풍을 가면 어머니는 김밥을 싸서 나무 도시락에 이쁘게 담으시고 청량음료와 과자, 삶은 계란 등을 담아 주셨다.
소풍지에 도착해서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김밥을 먹으면서 콜라, 사이다, 환타 등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 청량음료의 종류는 콜라, 사이다, 환타 이렇게 3종류가 있었다. 지금은 별거 아닌 음식인데 그때는 소풍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다. 음료도 친구들과 서로 바꿔가며 한 모금씩 마셔가면서 마셨다. 이때 환타의 과일맛은 넘사벽의 맛이었다. 콜라, 사이다와는 다른 보다 현실적인 과일 맛의 환타의 그 맛은 최고였다.
콜라 이야기는 몇 번을 했으니 환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물론 코카콜라에서 개발한 음료이니 콜라 이야기도 나오지만 어찌 보면 콜라 때문에 환타가 나오게 된 것이다.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코카콜라는 엄청난 PPL을 하여 많은 사람에게 코카콜라를 알리게 된다. 그리고 유럽 각국에 지사를 만들어 코카콜라를 유럽 전역에 판매하게 된다. 그중 독인에서의 판매량은 매년 급증하게 된다. 그 독일 지사에는 막스 카이트라는 직원이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독일 지사장이 사망하고 막스 카이트는 코카콜라 독일지사를 인수하게 된다. 이때의 독일의 코카콜라 판매량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판매량이 많은 나라가 된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지만 미국의 코카콜라 본사는 독일에게 지속적으로 코카콜라 원액을 공급하였다. 당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참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때 코카콜라는 군인들에게 약 냄새나는 물보다는 콜라가 더 인기가 있었다. 전쟁 중에 막스 카이트는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의 코카콜라 지사까지 모두 인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1941년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막스 카이트는 큰 문제를 만난 것이다. 미국이 독일과의 무역, 유통을 전면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코카콜라 본사로부터 콜라의 원액을 받아야만 콜라를 생산할 수 있는데 이것이 막혀 회사를 접어야 하는 위기를 맡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막스 카이트는 독일 시장에 공급할 음료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전시 중에 제조가 가능한 음료를 연구하는 중에 유장, 사과 섬유질, 과일 부스러기, 사탕무에 탄산을 가미한 음료를 개발하였다. 맛은 꽤 괜찮았다. 그래서 상품명을 고민하는데 마땅한 이름이 나오지 않아 직원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하자 한 직원이 "상상력을 제품명으로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 것이다.
상상은 독일어로 FANTASIE 였고 이를 줄여서 "FANTA"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최초의 환타는 지금의 맛은 아니었으나 독일에는 다른 음료가 없었기에 환타의 판매량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이렇게 환타가 코카콜라의 대체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년 300만 병 이상 팔리게 된 환타는 위기의 독일 지사의 구세주가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전쟁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자 코카콜라 본사는 마스 카이트에게 위기를 극복한 것을 높게 사고 코카콜라 유럽의 경영을 맡기게 되었다. 막스 카이트는 전쟁 중 환타로 벌은 수익을 전쟁이 끝난 후 본사로 보냈던 것이다.
1955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지금의 오렌지맛의 환타 맛이 개발되고 지금의 환타가 된 것이다. 1960년에 미국의 본사에서 환타를 인수하여 정식으로 생산하여 코카콜라의 정식 상품이 되어 다양한 환타 맛이 생산되게 된 것이다.
전쟁 중이고 원액 공급이 막힌 상황에서 막스 카이트는 절망하지 않고 많은 기회요소를 생각한 것이다. 전쟁 전까지 독일의 음료시장을 미국이 장악한 상황에서 원액공급이 끊긴 것은 코카콜라 독일지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일의 음료시장에 공백이 생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결국 많은 수요가 있으나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고 그 수요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이 당시 독일 음료시장이 자생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아마 지금 우리는 환타라는 음료를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막스 카이트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그의 추진력으로 최선의 음료를 개발하여 코카콜라 독일지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모든 회사는 경영 중에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는 경영진이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대처하기 위하여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 추진하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물론 막스 카이트는 운도 좋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FANTA를 만들어 출시하였기에 시장 상황이 운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예 제품을 만들지 않았다면 운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운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따르는 것이다.